지난번에는 일론머스크와 제프베조스에 대해서 알아보았었는데 이번에는 시선을 중국쪽으로 옮겨서 마윈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마윈에 성공할 수 있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자세히 살펴보겠다. 마윈은 알리바바 그룹 창업자이자 초대 주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어이름인 잭 마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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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의 성장기와 사업을 시작하기 전 이야기
마윈은 영어를 독학으로 익혔다고 한다. 중국 항저우에서 외국인이 많은 도시인 시후에 살았던 이유로 마윈은 영어를 공부하고 외국인에게 말을 걸면서 영어실력을 갈고 닦았다. 마윈은 1964년생으로서 제프베조스도 1964년생으로 알려져 있어서 동갑인 것 같다. 이 시기에 태어난 갑부들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의 태동과 확장기에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출 수 있었던 연령대이니 어떤면에서는 성공을 위한 조건을 어느정도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수많은 64년생 중에서 몇명만 세계적인 갑부로 성장한데는 그 이유가 있을 테니 한번 살벼보자. 마윈은 198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취업을 시도했는데 키가 작아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몇군데 간신히 취업해서 일을 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고 수학을 잘 못한 이유로 삼수를 통해 항저우 사범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상위권 성저을 유지하면서 우리로 치면 학생회장을 맡게 된다. 항저우 사대 학생회장뿐만이 아니라 항저우 학생연맹 회장이 되면서 전설적인 인물로 회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 지속적으로 지원했으나 실패하고 1988년에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의 영어강사로 들어가게 된다. 이 때 강의력은 좋았지만 월급이 박봉이어서 밤에는 야간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때부터 무역업계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1992년에는 강사활동을 하는 동안이었지만 첫 기업 경영을 시작하게 된다. 하이보라고 하는 통역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1995년부터 창업활동에 매진하기 위해서 교직을 그만둔다. 마윈은 1995년에 미국에서 인터넷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때 중국관련 자료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발견하고 차이나옐로우페이지라는 중국최초의 인터넷 기업을 만든다. 이 회사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회사였는데, 당시 사람들의 인터넷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고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 치여서 결국 마위은 이 회사에서 사퇴하게된다. 한 때 제리양의 스카우트도 있었는데 이를 거절하고 1997년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의 인터넷 네트워크 업무를 담당한다. 이 업무는 차이나옐로우페이지 동료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이 부서에서는 중국 국제전자상거레센터 회사를 세운뒤 마윈에게 조직관리업무를 맡겼는데, 마윈은 이 조직의 심한 규제와 박한 대우를 받았다. 결국 마윈은 뛰어난 성과를 냈지만 자신과 동료가 홀대받는 상황을 타계하고자 1999년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항저우로 떠난다.
알리바바 설립과 성장
마윈은 1999년 1월에 알리바바를 설립한다 알리바바는 b2b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출발했다. 적은 자본금으로 모든걸 해결해야 했기때문에 마윈 자택에서 함께 숙식을 하면서 1999년 3월에 홈페이지를 완성했다. 초기에는 수입이 많지 않아서 1999년 7월에는 빚을 내야하는 상황까지 갔다. 이 때 벤처 투자를 받으려고 했는데, 어려운 현실상황에서도 너무 낮은 투자는 거절하기도 한다. 회사가 저평가되었다는 이유에서이다. 결국 8월경에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달러 투자를 이끌어냈다. 2000년에는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2천만달러 투자를 이끌어낸다. 손정의는 이 때 6분만에 투자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 3000배의 투자 수익을 실현한다. 2001년 알리바바는 적자를 벗어나고 2003년에 c2c기업 타오바오를 설릴하고 알리페이를 출시한다. 이후 2014년에 알리바바는 뉴욕 주식 시장에 상장하게 되고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을 해오게 된다.
현재 마윈은 중국과 미국 양쪽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어서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금까지 이루어 온 성공들은 그가 리더로써의 충분한 자질을 가지 있음을 보여준다. 1999년도에 기존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출발은 하려고 결정하였을 때 그의 동료들이 5분만에 그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는 사실은 볼 때 팀원을 조직하고 이끄는 리더쉽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참고할 만한 마윈의 어록
그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경계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하면 경험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전문가가 없다고 하는 등의 핑계를 대기는 쉽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구글이나 포털에 검색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생각을 많이 하지만 실행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할 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심장이 빨리 뛰는 만큼 행동을 더 빨리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대신 무언가를 그냥 하라. ‘
마윈의 어록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하거나 고민을 하는 동안 시간은 지나가고 인생은 흘러간다. 무엇인가 실천하고 행동을 하는 것은 그 결과를 만든다.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을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의 실천력과 지나온 길도 되돌아보게 만드는 말이다. 마윈은 또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가난한 이유는 야망이 없어서다.’
앞으로 미래를 예상하고 목표하는 것이 없으면 현실은 바뀌지 않으며 이는 야망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마윈은 어려운 환경과 엔지니어링과는 거리가 먼 영문학도 였지만, 야망이 있었고 실천을 했다. 한발작 한발작씩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현실을 개선했고 그 결과 알리바바 그룹이라는 거대한 회사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뛰어난 리더쉽과 자기 확신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리더로써 자리매김한 것 같다. 실천에 대한 그의 말이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떤 면에서 일론머스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론머스크는 배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상에서 기존에 배터리가 비싸기 때문에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사고방식은 자동차가 처음나왔을 때 자동차가 비싸기 때문에 말을 타는 것이 현명하며 자동차를 타는 것은 어리석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결국 자동차는 대중화되었고 이는 대량생산으로 인한 비용 절감과 효율화로 인한 것이다. 만일 배터리가 비싸다면, 배터리를 구성하는 것들을 분석한 다음, 그 재료를을 구입하고 이를 조립하는 과정을 다시 비용으로 환산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배터리를 조합하면 휠씬 적은 비용으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기존의 사고방식으로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분해하고 조합해서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내는 것이 일론머스크의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마윈도 기존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이 과정에서 리더로써의 자질을 가감없이 보여준 것 같다. 실천하는 행동력, 그리고 확신에 찬 마윈의 말은 리더로써 손색이 없는 것 같다. 현재 마윈은 중국정부와의 마찰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행적과 그가 한 말들을 곰곰히 되새겨 보면 배울 것이 정말 많은 것 갈다.